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가이스하르트 (문단 편집) == 지휘관이 되다 == 장교로 진급한 가이스하르트는 제77전투항공단(JG 77) 제I비행단 예하의 제3비행중대장 보직이 주어졌다. 6월 23일, 79대 격추의 무공으로 그에게는 곡엽기사철십자 훈장이 수여되었다. 이 서훈은 6월 28일과 29일에, 라슈텐부르크에 있는 [[총통]]의 전용 벙커인 볼프산체에서 [[히틀러]]가 직접 가이스하르트와 야간전투기 에이스 헬무트 렌트 소령, 그리고 [[하인리히 제츠]](Heinrich Setz : 1915~1943 / 138대 격추) 대위에게 훈장을 걸어주며 거행되었는데, 가이스하르트는 소환되기 전까지 자신의 격추수를 82대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. 곡엽 훈장을 받은 후, 그가 지휘한 3중대가 속한 1그루페는 [[동부전선]]을 떠나 [[지중해]]의 [[시칠리아]] 섬으로 이동했다. [[몰타]] 항공전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. 10월 말까지 가이스하르트 중위는 몰타 상공에서 연합군기 9대를 격추하고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도 9대 이상의 전과를 더하게 된다. 11월 10일에 격추한 [[스핏파이어]]는 가이스하르트의 100번째 승리의 제물이었는데, 이것은 독일 공군에서 30번째로 100대 에이스가 되었음을 의미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